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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읽기 2018. 6. 23. 15:57
인간이 사교적이기를 원했던 존재[신]는 손가락으로 지구의 축을 건드려, 그것을 우주의 축 위로 기울였다. 나는 그 가벼운 동작으로 인해 지표면이 변하여 인간의 성향이 결정되는 것을 상상한다. 먼 곳에서 수많은 무모한 인간들의 환희에 찬 소리를 들으며, 궁중과 도시를 건설하는 것과, 기술과 법과 상업이 태어나는 것과, 파도처럼 민족들이 형성되어 밀려가듯 퍼져나가 소멸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상상한다. 인간들이 그들이 살기에 적합한 몇몇 지점에 모여들어 서로를 흡수함으로써, 나머지 지역을 끔찍한 무인지경으로 만드는 것을 상상한다. 그것은 사회적 결합과 기술의 유용성에 대한 훌륭한 기념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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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딸에 대하여읽기 2017. 10. 10. 14:51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 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렸다.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는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내 잘못인지도 모르지.그런 의심은 끝내 떨쳐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내 죄책감으로 바뀐다. 나는 빛깔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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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두근두근 내 인생_김애란읽기 2017. 6. 28. 14:38
"그런데 누나.""응?""저는 잘 이해가 안돼요.""뭐가?""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그렇지.""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그래.""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저는 아직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하면 어느 땐 한없이 슬퍼져요."